근자에 읽은 책 중에서 감명받은바 큰 책이어서 소개를 합니다.
책속에 부록으로 들어있는 유엔총회 연설문과 리우정상 회담 연설문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가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들이 봉사하고자 하는 또는 대표하고자 하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다
2013년 연초, SBS는 <리더의 조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방송은 시청자들 사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켜, 감동과 감화를 받았다는 후기가 잇달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참된 리더에 목마른 한국 사회를 방증하기도 할 터였다. 다큐는 세계 곳곳의 리더 6명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인생철학과 삶의 궤적을 진솔하게 조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인상 깊지만 특히 각인된 인물이 우루과이 前대통령 호세 무히카였다. 65%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고등학교 중퇴 대통령. 28년 된 낡은 자동차 한 대만을 두고,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대통령. 허름한 농가에서 직접 농사짓는 대통령은 실로 낯설고 뜻밖이었다. 가장 가난하기에 가장 풍요로운 대통령, 무히카에게 매료되는 것은 어쩜 당연할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발전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무히카, 2013년 유엔 총회 연설 중에서(책 서문)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21세기북스, 2015)는 무히카에 대한 평전이다. 우루과이 장기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 외에 접하는 남미 정치인 일대기로서 책 자체가 지닌 희귀성도 크다. 2015년 2월 퇴임식의 감동을 스케치하며 시작된 책은 1934년 출생부터 2015년 현재까지 특별하고도 친근한 인간 무히카의 모습을 균형감 있게 조명한다. 그 속에는 혁명가이자 농부, 정치가이면서 철학자인 유래를 찾기 힘든 '이상적' 대통령의 모습이 담겨있다.
책 표지에 사람 좋게 웃는 노인(흡사 K사의 치킨할아버지 같다)의 모습을 보면 무장 게릴라 조직을 이끌고 13년간 독방 수감생활을 거친 혁명가 무히카를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는 분명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는 게릴라 조직 투파마로스 리더로 활동했고, 수차례 죽을 고비와 오랜 수감생활을 거쳐 대통령에 이른 입지전적 우루과이 정치사의 산증인과 같은 인물이었다. 무히카를 통해 생소하기만한 우루과이(남미전반) 근현대사를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의 장점인데, 우리나라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더욱 그렇다. 특히 냉전 상황 미국의 정치 조종은 우리 역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탁월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냉전 상황에서 미국은 항상 쿠데타 세력을 등장시킨다는 목표로 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공산주의자가 아닐지라도, 미국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민중주의 세력이 순수하게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하려는 가능성만 보여도, 미국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쿠데타 세력을 지원할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가로막은 사람은 브라질의 제뉴 쿠아드로스일 수도 있었고,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일 수도 있었습니다." 306쪽
그럼에도 우루과이에 낯선 독자들에게 책에 담긴 정치 비화나 인물론(論)은 장황하고 지루할 수 있다. (일부 내용은 스킵하며 읽어도 무방하다.) 이러한 단점을 메워 주는 것이 철학자 무히카의 발견이다. 소박하고 실천적이기에 감동을 주는 일생철학이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는 대통령이라니,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내 인생의 철학은 절제이다. 이것은 내핍과는 다르다. 나는 필요한 만큼 소비하고 낭비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살 때 그것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쓴 시간으로 사는 것이다. 이 시간에 대해 인색해져야 한다. 시간을 아껴서, 정말 좋아하는 일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일에 써야 한다. 시간을 우리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 때, 나는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자유롭고 싶다면 소비에 냉정해져야 한다." 19쪽
"나는 가난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다. 삶에는 가격이 없다." 368쪽
전 재산이 29만원이라 주장하는 前대통령이 사는 나라,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이가 시장출마를 선언하는 나라, 우리 대한민국에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큰 책이다. 무히카가 인생을 통해 보여준 "정치가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은 그들이 봉사하고자 하는 또는 대표하고자 하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다. <371쪽>"라는 당연한 진리가 당연해 지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루과이 역사 ․ 정치에 대한 배경 부족으로 깊은 이해가 어렵지만 부록으로 담긴 어록과 연설문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일독의 가치는 충분할 듯싶다. SBS 다큐멘터리를 보고 책을 읽으면 더욱 금상첨화(錦上添花)일듯.
기타 발췌
"새로운 사람은 메시아적 비전입니다. 새로운 사람은 바로 지금의 우리이며, 그 상태를 출발점 삼아 정립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진 것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전제는 몽상과 다름없습니다. 그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권력에 오르면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 있다.' 그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말 아닐까요" 92쪽
"중요한 일들이란 언제나 단순한 법이지요. 따라서 단순하게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은 결국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쉽게 접근해야 합니다." 299쪽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 사회는 이 점을 인식해야만 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만 한다. 배제는 결코 경제적이지 못하다." 357쪽
"세상엔 딱 한 종류의 실패자들이 있는데, 이는 싸우기와 꿈꾸기와 사랑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369쪽
"그 많은 것들을 버리면서 또 다시 버려질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넌센스다. 지구 한쪽에는 단 두 병의 물을 길으러 5킬로미터를 걷는 여성들이 있는데 말이다." 373쪽
"흔히 이 행성의 생태학적 위기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의 야망이 승리한 결과이다. 이것은 우리의 승리이자 패배이기도 하다." 374쪽
제가 말하는 것들은 매우 기본적인 것입니다. 즉, 발전이 행복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구를 사랑하고, 다음 세대를 보호하고, 자식을 돌보고, 친구를 사귀고,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되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384~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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