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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며
작성자 서대화 등록일 2022-05-08 13:26:10 조회수 21

 

 

 컴퓨터에 능한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 내겐 큰 행운이었다.

그 친구는 오래 전부터 나에게 컴퓨터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했지만

나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나이에 그 골치 아픈 것을 어디에 쓰려고 배우느냐는 반응에 그는

노골적으로 나를 무시하며 빈정댔다.

"남은 인생은 눈먼 장님으로 살 것이냐?" 는 것이다.

 

 지금껏 그의 권고를 가볍게 일축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좀 미안스럽기도 하거니와

그래 못 할 건 또 뭐냐는 다소 오기 섞인 결정으로 이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나보다 더 기뻐하며 컴퓨터 의 구입에서부터 키보드 익히는 방법과 

그외에 알고 있어야할 여러 가지를 설명했는데 나는

마치 꿈속을 방황하듯 몽롱한 것이 술 취해 정신이 헷갈리는 것 같았다.

 

 글자판 익히는데 일주일 여를 매달렸어도 손과 마음은 제각기 놀았다.

저 재주 없는 건 생각 치 않고 이게 다 나이 탓이려니 했다.

그런 중에도 시간이 지나니까 눈을 감아도 손끝으로

희미하게 글 판이 잡혀가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나는 일기형식의 낙서도 하고 먼 곳의 친구에게 편지도 쓰고

간단한 문서도 작성해 가면서 걸음마를 시작했다.

 

 친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듣는 순간엔 곧잘 따라할 것 같던 것이 그 시간만 지나면

기억 저 끝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리고 마는 내 두뇌의 한계가 참 야속했다.

그는 또 이따금 내게 전화를 걸어

"모르는 것이 있을 텐데 왜 묻지 않느냐?" 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컴퓨터의 오묘한 원리를 곰곰 히 생각해 보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난 설 연휴 전전날이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연휴중인 그 일요일에 있을 회의 자료를 작성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헌데 이 자료를 인쇄까지 끝내었거나 디스켓으로 저장을 해 놓았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을 별다른 생각 없이

다음날로 미루었기 때문에 긴박하게 애태우는 사건을 겪게 되었다.

 

 하룻밤을 지난 연휴 전날 늦은 오후,

지난밤 작성한 문서를 꺼내어 인쇄하려고 컴퓨터를 켜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전기 코드가 이상인 듯해서 여러 번 확인해도,

스위치를 반복해 눌러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모니터 화면 부위에는 별빛 같은 제법 아름다운 녹색 불빛이

무심하게도 반짝이고 있는데 눈치 없는 본체 덩어리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시도해 보지만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컴퓨터는 별로 고장이 없는 기계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상도 하다.

그렇다고 죽은 말 지키고 서 있듯 그냥 있을 수도 없고

이 복잡한 물건을 뜯어내고 속을 들여다본들

더욱 캄캄할 수밖에 별 도리가 없으니 난감하기만 했다.

더욱이 늦은 시간까지 머리 짜내어

구상한 것을 다시 기억해 낼 재간도 없어 꼭 이것을

고쳐야 한다는 집념은 포기하지 못해 답답할 뿐이었다.

 

 내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많은 것을 지도해 준 친구, 

TV 드라마 에 출연하던 맥가이버라는 극중 등장인물의

재주를 능가하는 기막힌 재주를 가진 내 친구,

그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는 무슨 별난 방법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집념이 강한 그는

나의 곤경을 역시 간과하지 않았다.

설이라 시골집에 노모를 뵈러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바쁜 시간에 나를 찾아 서울 저편 끝에서

이쪽 관악산 아래까지 달려 왔다.

시골의원 왕진가방 같은 공구함 을 들고 들어와

본체를 뜯어내고 여기저기를 세밀하게 살피며

젓가락 질 하듯 곧은 막대기로 곳곳을 대보고 누르고 하며

움직이는 바늘을 여러 번 확인 하더니

이게 문제라며 조그맣고 까만 부속품 덩어리를 가리킨다.

 

 이것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늦은 시간,

그것도 연휴가 시작되는 날 밤에 이 부속품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다는 말인가? 컴퓨터 메이커인 대기업 AS 센터 직원은

이미 모두 퇴근한 후였고 용산 전자 상가와 청계천 부속시장,

끝내는 동네 전자제품 재활용 센터 에 까지

수소문했지만 필요한 부품은 어디에서고 찾을 수 가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나 포기하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는 것인가?

 

 자료의 내용을 기억해 내는 힘겨움에 비하여

회의를 다음으로 미루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유혹이

구렁이처럼 담을 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친구는 다른 길을

한참 찾던 끝에 최후의 방법이라며

본체 속에 숨어있는 손바닥 만 한 검은 물체를 조심스럽게 떼어 내더니

이것이 인간의 두뇌에 해당하는 하드라는 것이라며

부드러운 천에 곱게 싼다.

 

 그는 자기의 컴퓨터 속의 하드를 떼어내고

나의 것을 대신 연결한 후에 필요한 문건을 찾아내어

회의에 차질이 없도록 해 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바쁜 걸음으로 집을 나가 노모를 뵙기 위해서 고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 일요일,

친구의 지혜로운 방법으로 회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사하게 진행되었고 내 컴퓨터 또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이

말끔하게 수리할 수 있었다.

 

 뇌사자의 뱃속에서 장기를 떼어간 듯

무용지물이 되어 섬뜩 하기까지 한 본체 덩어리가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그 연휴 며칠간은

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쉽고 서운하고 지루한 날들이었다.

 

 삼촌이 보내오는 메일을 읽으면 마치

고향에 다녀온 듯한 느낌이라며 회답을 기다리고 있을

미국 유학중인 큰조카와 이러한 내막을 알길 없는

PC 통신 속에서의 정다운 친구들 또한

나처럼 그 궁금한 마음이 여간 아니었을 것이다.

고장 난 컴퓨터로 인하여 전에 느끼지 못한 아쉬웠던 삼일간의

연휴기간은 말하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이중의 고통에서

경쾌한 컴퓨터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삼중고까지 체함 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하여 알게 된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또한 내게는 유익한 것이었다.

 

 친구의 안내에 따라 인터넷에 들어가 본 정보의 바다,

아직은 서툴러 한구석에서 기웃거리고 있지만

그곳은 나에게 삼차원을 넘어선 그 이상의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수필문학 2000. 4월호. 초회추천작품

 

 

              * 컴퓨터를 처음 대하던 시절,

                 PC통신을 배우며 첨으로 수필이라는 글을 쓰기 시작하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로  문단에 데뷰를 한 셈이지요.

                  pc통신, 디스켓 등 지금은 없어진 용어가 그립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천리안 ID를 무료로 사용하게 된것도 특혜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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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수(2022-05-12 07:50:32)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친구를 통해 일찍 컴퓨터에 입문하시고
    잘 활용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어 내신 두 분의 사랑과 우정이
    읽는 모든 분들께 전해집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깊은 우정이 떠오릅니다.

    저도 두 분처럼
    주님 안에서 서로 기도하며 아껴주는
    아름다운 만남과 나눔을 위해 노력하며
    남성성가단에서 그런 사랑과 우정의 향기가
    널리 퍼져 나가도록 애쓰겠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 남성성가단과 가족 모두에게
    늘 함께 하시길.
    여호와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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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위원회(2022-05-08 13:52:15)

    매우 오래전 얘기이네요
    잊어버렸을 만한 얘기인데 이렇게 보니 기억이 납니다.

    기억은 오래가지 못하나
    글은 생생하게 ~
    당시의 옛이야기 일지라도 모르고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곤 합니다.

    수필문학에 등단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든 얘기입니다.


    PC통신은 www(일종 따따따)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화되기 전
    전화망을 기본으로 접속하는
    PC 네트워크 정보교환 서비스 입니다.

    게시판, 메일, 동호회, 자료실 등으로 구성되었고
    모뎀을 사용했기에 통신 속도가
    1980년대까지 1200~9600bps에 불과했으며
    56000bps까지 향상되었지만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하기 어려워
    거의 텍스트로만 서비스 되었습니다.
    현재 인터넷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느렸습니다.

    그러던 1990년대에는
    천리안(데이콤), 하이텔(KT)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2000년대에 들어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화되고
    초고속 인터넷 회선이 보급되면서
    2007년 하이텔이 문을 닫으며
    PC통신은 안녕 ~

    PC통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인터넷 문화 각종 용어 줄임말 이모티콘의
    상당수가 PC통신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이때에 서작가가 수필문학 등단기회를
    잡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댓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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