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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작성자 구본홍 등록일 2022-03-27 14:35:01 조회수 28
 

     <봄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 나온다는 경칩(驚蟄)이면

       꽁꽁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 했다.

       살얼음까지 풀리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골든 크로스 춘분(春分)이 다가온다.

       

       봄을 알리는 것은 화신(花信)보다

       늘 상 봄비가 먼저 전령(傳令)처럼 내린다.

 

     봄비는 이따금 세찬 바닷바람에 실려 와

     꽃샘잎샘 부리지만 대체로 보슬비, 가랑비, 이슬비로 온다,

     봄비는 사명을 품고 온다.

     언 땅을 녹인다. 그리고 메마른 땅속으로 스며들어

     목말라하는 나무뿌리에 생명수가 되어

     둥지와 가지로 노닐며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운다.

 

     두툼한 겨울 외투 속에 몸을 움츠리고 방한모에

     방역마스크까지 쓰고 혹시라도 넘어질까 부딪칠까 봐

     땅만 보고 걷던 길인데, 어느새 찾아온 화신이

     가로에서 아파트 정원에서 그리고 강변 산책로에서

     “저요! 저왔어요!”하듯 눈 부신 빛으로 다가와

     고맙게도 얼굴 들어 허리를 펴게 한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 산수유, 조팝나무, 그리고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나면서 어둡고 침침하던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다. 새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툭툭 뿌리듯  여기저기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들떠서 성급해진 마음에 겨울 외투, 점퍼 모조리 싸서

    세탁하게 보내고 창문 모조리 열어 먼지 털고

    물걸레질하며 화신에 응답한다.

 

   봄비는 그렇게 봄을 재촉하러 오고 꽃잔치를 열어준다.

   해마다 이맘때면 봄의 찬가를 부르고 싶어진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봄비를 슬프게 노래하는지

   그게 참 궁금하다.

 

   시인 이수복은(李壽福, 1924 ~ 1986) 봄비를 이렇게 노래했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 오르것다.

 

   우선 시인은 봄비가 그치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약동하는 자연 속에서 종달새가 노래하고

   벙글어진 화사한 꽃과 처녀애들이 시샘하며

   서로 견주리라고 상상한다.

   그런데 왜 새롭고 아름다운 녹색 생명으로 돋아날 풀이

   서러운 빛일까. 왜 종달새만 외롭게 날고 있을까,

   아! 마지막 연(聯)을 보면 따뜻한 봄볕에 피어날 아지랑이에서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을 연상하고 있다.

   겨울 동안 힘들어하던 임과 이별한 후 맞는

   생동감이 넘치는 봄이라 더 서러웠음을 짐작케 한다. .

 

    한국의 성인가요도 봄비를 그렇게 슬프게 노래하고 있다.

    박인수의 봄비(2008)는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면

    아름답고 새 희망의 봄을 재촉하는 빗방울 소리가

    오히려 쓸쓸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래주지도 못하고

    눈을 적시는 빗방울이 눈물이 되었다고 했다.

 

    이은하의 봄비(1995)도

    님은 봄비 속에 떠났는데 봄비가 다시 오지만

    임은 오지 않는다며 애절하게 외친다.

    흔히들 헤어짐은 가을이라 했는데, 어째서

    다시 소생하는 봄이 이별이란 것인가.

 

    <강 건너 봄이 오듯>에서 송길자(임긍수 곡)는

   

    "앞 강의 살얼음이 풀리면서

    내 마음 어둔 골에 나의 봄 풀어놓아

    화사한 그리움 말없이 그리움 말없이 말없이 흐르는구나”라고 노래했다.

 

   봄꽃도 화사하게 피고 짐 실은 배도 새벽안개를 헤쳐왔는데,

   님 실은 배는 오지 않고, 그리움은 뗏목처럼 강물따라 흐르기만 한다.

 

   마치 격렬한 반전(反轉)같은 봄의 노래들,

   봄을 재촉하는 봄비와 봄을 알리는 화신은

   모두에게 반갑기만 한데

   간절한 소망이며 기대하는 희망일진대

   왜 봄날들이 애절한 그리움이 되었을까?

 

   T .S.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는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하였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바램을 뒤섞으며 봄비로 무딘 뿌리를 흔든다.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지켜주었다.

     모든 걸 잊게 해주는 눈으로 덮어주고

     마른 알뿌리로 얼마간의 생명을 주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꽃과 그 향기에 취해 있지만

   은총의 봄비가 땅속으로 스며들 때까지

   잎을 내고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우내 매마른 땅속 깊은 곳에서

   뿌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보이지 않는 희생적 수고를

   알지 못하고 꽃향기에만 취한 무심한 세태가 혹시 잔인하게

   느껴진 것일까, 혹은 봄을 부활이라 한다면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그 기나긴 고통이 잔인하였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의 황무지였던

   이 땅에 민주의 봄, 서울이 봄을 오게 했던

   그 기나긴 고통, 4월이 잔인하다 할 수 있겠다.

   소련의 잔혹한 진압으로 실패하고 곧바로 겨울로 돌아간

   프라하의 봄도 잔인한 봄이었다.

 

   봄의 슬픈 이별은 그렇게 잔인하게 가버린

   민주화를 님으로 부른 것이 아니었을까.

 

   다시 움터오는 라일락의 잎새, 개나리 진달래의 화사한 군무,

   금방 폭발할 것처럼 한껏 부푼 홍목련의 만삭이

   오늘 새삼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토록 토양과 기후를 까다롭게 가리는 자유민주주의가

   그렇게 이식하기를 거부하며 세상을 뒤집더니,

   이윽고 이 땅에 비로소 착근되려 하기 때문이다.

 

   올 4월은 엘리어트가 민망할 만큼 아름답고 안온한

   달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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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화(2022-03-29 14:28:43)

    봄비, 제목만 읽어도 공감 되는 감성적 내용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게시하신 권사님의 수필에 비해 퍽 부드러운 느낌을 받게 하는 봄비로 인해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생명의 봄을 만끽 합니다.
    봄비는 사명감을 품고 온다 하시는 주장은 새로운 발상. 참신합니다.
    언 땅을 녹이는 사명, 나무에게 생명을 주는 사명. 꽃과 잎을 트이게 하는 사명은
    작가의 예리한 사고의 표현인줄 압니다.

    지금 까지의 시사적이거나 신앙적인 내용에 비해서 퍽 다감한 내용과
    사진작품의 봄기운이 향기롭습니다.
    봄비에도 사명이 있거늘 나는 아무 사명감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왔고요
    앞으로도 사명감 없이 주어진 내 삶을 살아가는 인생인것을 어떡합니까.
    하나님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아멘.
    댓글 신고

  • 김철환(2022-03-28 10:11:27)

    늘 예사롭게 보고 느끼고 지나쳤던 봄이라는 계절을
    권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인식 하게 됨을 느낍니다.
    그 숱한 내용들 속에 움츠리고 숨어 있다가 하나둘씩
    봄의 전령으로 변신하여 우리 곁에 다가오는 갖가지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새삼 봄에 대한 내 무지가 들통 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올려 주셔서 봄에 대한 새로운 마음에 자세를
    갖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댓글 신고

  • 구본홍(2022-03-27 20:34:36)

    김기두위원장님, 이성수 총무님, 고맙습니다.
    교회 1부 예배마치고 조찬하고, 비엔나 커피숍에서
    창가에 앉아 따사한 햇볕을 맞으며 썼습니다.
    교회로 가는 길에 봄비를 맞아 생기가 돌며 불쑥 얼굴을 내민 봄꽃들,
    망울져 터질 것 같은 목련봉오리를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불현듯 떠올렸습니다.
    지난 5년간의 질곡같은 압정에서 숨죽여 있던 민초들이
    비로소 크게 숨 내쉬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모습을 보면서 생명력을 불어준 봄비가 고마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봄비를 너무 슬프게 노래했습니다.
    이젠 봄비는 은총의 단비가 되었습니다.

    글을 급하게 써서 올렸더니 몇줄이 통째로 날아간 곳도 있군요.
    문맥도 안통하는 글을 어찌들 읽으셨습니까?
    ㅎㅎ대단하십니다.
    수정했습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댓글 신고

  • 이성수(2022-03-27 17:11:18)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봄비는 사명을 품고온다 는 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온땅 녹이고, 메마른 땅속 스며들며 목말라 하는 나무뿌리에 생명수 역할하며 둥지의 가지로 노닐며 꽃을 피우고 잎을 틔운다 나는 주님의 자녀로서 봄비처럼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금과 빛의 역할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깊은 다짐을 하게됩니다
    귀한 선배님들의 주님을 향한 믿음과 헌신을 본받게 하옵소서
    댓글 신고

  • IT위원회(2022-03-27 15:21:19)

    구본홍 작가의 '봄비'

    코로나 팬데믹으로
    온통 우울하기만 했던 때에
    봄의 찬가를 보고
    잠시 잊을수가 있었습니다.

    글 내용에 맞추어
    잘 편집되어진 이미지 까지 ~
    그 분위기는
    과거 그의 이력까지 엿볼수있게 하는
    충분한 내용입니다.

    밖은 아직 쌀쌀하지요
    마후라와 두꺼운 옷까지
    아직 벗지 못한체 행동하는데
    이 글을 보고 마음을 바꾸어야 할듯 ~
    그래도 오늘은 감을 봐야지
    여긴 아직 춥거든 ~

    글 후반에 지적했듯
    봄비를 슬프게 표현한 노래하며
    시인 이수복님까지
    일본 압제하에 살던때라 그러할까?
    그런데 T .S. 엘리어트는
    4월을 잔인한 달로 표현했을까?

    글 잘 보고갑니다.
    땡큐 ~
    댓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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