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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비둘기와 함께
작성자 서대화 등록일 2021-06-01 13:57:22 조회수 44

  에어컨 실외기 받침대 위에 비둘기 한 쌍이 종종 날아와 머물다 간다. 울음소린지 혹은 서로 소통하려는 그들만의 언어인지 특유의 단음(單音)으로 목청을 가다듬다가 사라지는데 그 소리가 원치 않은 불청객처럼 신경을 거슬린다. 녀석들이 날아간 뒤에 확인하니 아직 둥지를 틀었거나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잠시 머물다가 돌아가는 뒷모습이 살아갈 전셋집이라도 구하러 다니는 넉넉지 못한 서민부부의 모습처럼 짠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처지가 안쓰럽기는 해도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비둘기를 사육함으로 발생하는 불결함이 인간에게 공해가 된지는 이미 오래된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비둘기로 인해 당한 곤욕을 김철환 권사에게 들은 적이 있다. 날아든 비둘기를 길조(吉兆)로 알고 기뻐하던 며칠 뒤부터 겪은 그의 고충은 대리 체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충분히 공감 할 수가 있었다.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녀석들이 날아들 때 마다 우리는 유리 창문을 두드리면서 애초부터 자리를 잡지 못하도록 날려 보내기에 힘쓰고 있다. 그가 겪은 이야기를 듣고 들은 대로 이곳에 옮긴다. 물론 본인에게는 양해를 구했고 그 역시 흔쾌히 동의했다.

 

 

  그는 고상하고도 조용한 인품 그대로 조근 조근 내게 들려주었다. 이렇게....

 

  우리 집 베란다에 비둘기 한 쌍이 날아들었다. 처음엔 두 마리가 자리를 잡더니 며칠 지나서는 여남은 마리로 그 수가 늘어났다. 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성령의 임재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우리 가족은 무두 환호했다.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각오로 마음이 부풀기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비둘기부터 확인했다. 먹다 남은 빵이며 과자부스러기를 던져주면서 떠나지 말고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반려(伴侶)삼아 그림처럼 드라마처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구구구...” 하는 비둘기 특유의 소리를 성령의 속삭임으로 까지 듣게 되었으나 실은 이것이 비둘기로 인한 공해의 전주곡이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며칠이 지났다. 그중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앉았다. 신기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 너 개의 알을 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좋은 징조라며 즐거워하는 나에게 아내는 의미 있는 한마디를 건넨다. 평소 배려심 많고 잔잔한 성품에 비해서 어딘가 불만이 깃든 곱지 않은 말투였다. 뜰 앞에 쌓이는 비둘기 배설물을 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현관문을 들어설 때 마다 보이는 회갈색의 정결치 못한 흔적들이 생각났다. 아내는 이것을 일삼아 닦아내고 있는 눈치였다.

 

  과연 그랬다. 집안 어디에고 날아다니는 비둘기의 털하며 배설물의 뒤처리 등 만만치 않은 일을 아내가 떠안게 된 것이다. 빗자루로 쓸어 보았으나 깨끗이 제거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물을 뿌리고도 한참 있다가 수세미로 문질러야 겨우 배설물의 흔적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뿐, 삽시간에 또 쌓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여간 역겨운 일이 아니었다.

 

  비둘기로 인한 희망찬 상상은 얼마가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비둘기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고 배설물 또한 더해갔다. 이래서 안 되겠다싶어 놈들을 쫒아내기로 했다. 베란다 문을 열고 고함을 지르기도하고 금속성 기구를 심하게 두드려 보기도 했으나 그 때 뿐, 놈들은 여전히 우리 집 베란다 안에서 떠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총을 이용하기로 했다. 실제로 플라스틱 작은 알맹이가 발사되는 총인데 살갗에 맞으면 제법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둘기가 이 실탄에 명중되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간혹 날개부분을 맞은 놈들도 잠깐 움찔하고 놀라는 것 외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더 이상 번식이나 막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둥지 안에 품고 있는 비둘기 알을 모두 치워버렸다. 그런데 외출에서 돌아온 어미 비둘기의 탄식은 대단했다. 자식을 찾아 헤매는 어미 새의 울음소리가 하루 종일 온 집안을 들 쑤셔놓는다. 그 소리에 신경이 쓰여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정신집중이 안될 뿐 아니라 자식을 향한 모성의 울부짖음에 이것 역시 할 짓이 못 된다는 판단으로 다시 제 자리에 갖다 놓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마음에 공감이 되기도 했지만 그 인간적이고 평화적인사람 김 권사의 고충을 생각하면서 한참 웃었다.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이니까. ㅎㅎㅎ

 

  년 초에 날아 들어와 자리 잡기 시작한 비둘기는 봄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자 그 수가 헤일 수조차 없이 늘어났다. 푸른창공을 선회하며 날갯짓하는 무리의 생동감을 볼 때 평화롭기도 하고 생태계의 아름다움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작 이놈들을 울안에 두고 뒤처리를 감당해야하는 우리가족은 이제 그만 그 일에서 헤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비둘기는 귀소본능이나 방향감각이 뛰어난 새다. 창세기의 노아는 큰 비가 멈춘 후 비둘기를 지면에 보내어 물이 감()한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또한 1분에 1Km를 날 수 있는 비행능력이 있어 오래전부터 통신용으로 이용 되었다. 기원 전 3000년경 이집트의 어선에서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전서구(傳書鳩)라는 이름으로 프랑스군의 전황을 알리는 통신용으로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창세기 때부터 함께 살아오면서 인류를 위해 유익함을 주는 새임엔 틀림없다.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에서 둥지를 잃은 비둘기의 운명을 가여워 하고 있다. 문명에 쫓겨 사랑과 평화의상징까지도 희미해 져 가는 비둘기를 애처롭게 읊었다. 성북동 하늘을 날던 비둘기는 파괴되어가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떠돌이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집 베란다까지 밀려와 둥지를 틀고 앉은 새를 우리는 우리의 이유로 해서 또 쫒아낼 궁리를 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되기 전에는 전서구의 임무로 인간사에 서도 한 몫을 하던 비둘기다. 주체 못할 배설물과 흩날리는 깃털로 해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우리 집 비둘기가 오늘도 지붕 위를 선회하다가 베란다 공간으로 날아든다. 기계화 산업화로 인한 물질문명은 고도로 발달되었고 비둘기를 이용한 통신수단은 한낱 고대사속의 전설로만 남아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갈 곳 조차 없어져 인간의 틈새에 빌붙어 생명을 보전하려는 비둘기의 운명이 애민(哀愍)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둘기를 다시금 몰아내려는 우리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해명할까.

 

  이 시대는 사라져 가는 녹지 공간으로 해서 인간들도 성북동 비둘기가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무분별한 개발로 실은 우리도 살 만 한 환경에서 떠밀려 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새롭게 둥지를 틀어야 할 인간의 갈 곳은 어디일까, 비둘기를 향한 우리의 장난감 총 사격은 오늘도 계속 되었다.

 

  이 글은 2003년에 듣고 쓴 글이니 벌써 열여덟 해가 지나간 해묵은 이야기다. 그동안 분실한 것으로 알고 찾기를 포기했었는데 우연히 원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하게 되어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이곳에 게시한다. 김철환 권사는 지금도 남산골 단독주택 그 집에 살고 있다. 그 날의 그 비둘기들과 지금도 공생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듣지 않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남양주 아파트 실외기 받침대에 터전 잡으려는 비둘기 에게는 애초부터 만만한 싹을 보이지 않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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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홍(2021-06-12 01:19:37)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5년 2월쯤으로 기억됩니다.
    대한민국이 월남전에 군부대를 파병하였는데, 그 부대의 마크를 보니
    올리브 가지를 물고 나르는 비둘기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부대가 의무, 공병, 태권도교관으로 구성된 비전투부대
    비둘기부대입니다. 이 부대는 심리전부대로, 1965년 3월 16일부터
    1973년 3월 7일까지 2,913일동안 베트남 공화국 사이공에 주둔했었지요.

    부대마크의 비둘기가 상징하듯 이 부대는 비전투부대로 평화의 사도 역할을 한다는
    취지의 부대였습니다. 그래서 부대마크도 성경의 4300여년 전 사건 창세기 노아의 방주에 등장하는
    홍수 비둘기를 상징하였습니다. 노아의 비둘기는 그 후 평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김기두권사님도 언급하셨지만, 마태복음 3장16절에서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하여
    성령이 비둘기의 형체로 오셨음을 알렸습니다.
    그렇게 비둘기는 존귀하고 거룩한 성스러운 형체입니다.

    그런데 서대화, 김철환, 김기두, 이성수, 이화진 권사님과 이남용 단장님의 댓글을 보면
    비둘기는 골치 아픈 공해로 인식되어 진 것 같습니다.
    저도 새삼스러워 인터넷 검색창에 비둘기를 쳐보니 온통 비둘기 퇴치법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비둘기에 대한 글을 보면 하나같이 더럽고, 비위생적이며,
    해롭고, 전투적이며 공격적인 해조(害鳥)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질병을 옮기고 건물을 부식시키며 날아가면서 균을 흘린다는 글도 있습니다.
    인터넷에는 비둘기 퇴치약, 에어컨 실외기 비둘기 퇴치법, 퇴치망, 퇴치제, 퇴치용품 등등
    그 흔한 모기, 파리, 초파리, 깍다귀, 바퀴벌레 퇴치법보다 관련 업체가 성업 중인 듯해서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영미 각국에서도 이미
    반(反) 비둘기적 정책을 촉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형섭 전 교육부장관도 등산길에 비둘기의 싸움을 보고 그 폭력성에 질려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속에 있던 비둘기는 ‘Dove(멧비둘기)’였는데
    이제 보니 그건 허상이었고 내 눈앞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토종 싸움닭 같은 ‘Pigeon(닭둘기)’이었던 것이다.
    감성적 인식과 현실적 인식의 괴리였다”고 술회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평화’란 단어를 보고 생각나는 단어가 무어냐고 질문하면
    통일’이라는 대답이 9.9%인데 비해 ‘비둘기’라는 대답이 13%로 나왔다고 합니다.
    아직도 비둘기에 대한 선한 이미지 그것이 가져온
    선한 영향력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비둘기가 유해동물이지만 그 본디의 이미지는 훼손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마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대화 권사님의 글에서 느끼는 것처럼
    현실의 괴로움과 성경적 상징에 대한 경외심이 겹쳐서
    고민하시는 모습이 역력하고 수필의 모티브가 되신 김철환 권사님은
    그렇게 힘들어도 박절하게 박멸퇴치하지는 않으시는 여림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둘기가 뿌리는 배설물이 내 자동차를 뒤덮어서 씻어도 지워지지 않아서
    세차장에 가서 특별 청소를 합니다만
    그래도 마음속에 비둘기가 원망스럽지 않은 것이 신기합니다.
    아마도 성경을 읽지 않았다면 생길 수 없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 글을 읽은 후에 더욱더 비둘기를 보호할 길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깁니다.

    비둘기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번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도시환경에서 주어지는 풍부한 먹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민들이 던져주는 모이와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는
    비둘기가 하루에 필요한 먹이의 양(20~50g)을 충분히 충족시킨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 있으니 도시 비둘기들은 어렵게 먹이를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어
    여유시간이 많아지고, 이 시간의 대부분은 번식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게 된다는 전문가의 글도 있군요

    그렇다면 비둘기를 한 곳으로 모으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파트 어느 구석이나 동네 뒤 한쪽에 비둘기 집단 둥지를 만들면 어떨까 싶군요.
    비둘기 퇴치를 위해 장난감 총을 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둘기의 현실이 충격적이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김기두(2021-06-11 23:14:29)

    그럭저럭 개인적으로 바쁜 일과로 인하여 이제야 댓글에 참여하게 되네요

    비둘기하면 우리와 매우 밀접하게 존재하면서 누구나 할 얘기들이 많을것으로 여겨집니다.
    인간과 매우 밀접한 비둘기 ~

    비둘기는 믿는 우리에게 성경속에서 많은얘기를 들려주어 매우 유익하게 표현이 되고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사랑의 상징인 비둘기는 성령의 사역에 비유되기도 하지요
    또 평화와 여인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비둘기는 높은 바위틈이나 벼랑의 구멍에 둥우리를 틀고 먼 거리를 무리지어 날아다니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조류라고 듣고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를 살고있는 우리모두는 크고작은 여러가지들을 체험하여 할 얘기가 많을 것으로 압니다.
    물론 이사람도 마찬가지로 할 얘기가 많습니다만
    필자와 김철환권사의 대화속에서 익혔드시 비슷한 일들이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실외기 위에 저들의 터로 만들어 배설물과 울음소리는 정말로 몸서리를 치게 합니다.

    인터넷 자료를 보니 본디 양순하고 길들이기 쉬우며 순결하고 깨끗함을 나타내는 비둘기는
    노아가 지면의 물이 다 빠졌는지를 방주안에서 비둘기를 날려 보내 확인시키는 역활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까마귀를 날려보냈는데 까마귀는 그냥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비둘기를 날려보냈는데 올리브 잎을 가지고 돌아오자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회개의 제사를 올려 드림으로 죄를 용서 받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평화로운 관계로 회복된 것을 기념하면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한 비둘기 인가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내려온 성령이 바로 비둘기 같은 성령이었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21C 현세에는 그렇질 못하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미워하지는 말아야 겠습니다.

  • 이성수(2021-06-09 14:42:16)

    초대교회부터 순결과 성령의 상징인 비둘기~+
    서대화수필가님의 글을 읽으니 김철환권사님과 대담을 하시며 이야기 식의 글을 전개하신 글 안에서 마치 저도 그 대담속에 한 일원임을 느끼게합니다. 집 밖에만 나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비둘기!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공부 하다보니 비둘기는 우리에게 특별한 조류로 보이는데 두 분과 단장님 그리고 이화진권사님의 댓글을 보니 현실에서는 어떻게 비둘기를 대해야 하는지 걱정입니다. 성경과 현실의 차이를 통해 적지않은 삶의 여정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 속사람과 겉사람, 신앙인과 비신앙인과의 현실속에서의 생각과 행동의 차이,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주여 고민하는 저희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다 하나님의 은혜~

  • 이화진(2021-06-07 21:36:06)

    비둘기와의 싸움.
    어느 날 저희 아파트 옆동 1층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비둘기 때문에,
    점점 전쟁터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엄청난 지워지지 않는 배설물, 울음 소리, 지독한 냄새에 베란다가 하얗게 변해가고,
    그러다 보니 또 모이는 동네 고양이들,
    고양이 배설물과 울음 소리까지~~
    거기에 고양이 밥 준다고 저녁마다 나타나는 동네 아줌마 몇분~^^
    나중엔 주민들 싸움으로 까지 번지고~~
    오죽하면 약도 뿌리고, 한여름에도 베란다 창문 안에 두꺼운 비닐로 막고 살더군요.
    지나 다닐때 마다 얼마나 답답할까,
    비둘기는 어쩌다 인간과 적이 되어 버렸나하고 안타까워하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엔 관리사무소와 소방서까지 와서 정리를 했지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남용(2021-06-01 21:16:06)

    지난 5윌 경주 처가를 방문해서 격은 일이
    생각나게 하내요.
    저녁 때 우연히 창고에 갔다가 창고 석가래에 둥지를 튼 참새(아마도) 가족을 보았습니다.
    신기해서 장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나락(벼이삭) 다뜯어 먹는다며 전부 없애야 한다고 하시는걸 우선 말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참새 가족은 이사를 가고 없었습니다.
    장모님 하시는 말을 들었나 봅니다.
    서대화 권사님의 글을 읽고 다시한번 공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공생이 가능할것 같다는....
    늘 좋은글로 많은 깨닳음을 주시는 서대화 수필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김철환(2021-06-01 16:34:46)

    옛날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후로도 비둘기와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여남은 개의 알을 부화하가기전에 치워 버렸답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놈들은 태(胎)자리를 귀신같이 잘 알아서 아무리 쫓아도
    내 집인데 왜 난리냐는 식으로 막무가내 들어와 살기를 고집하고 있답니다.
    알을 낳으려고 집을 지으면 치우고 치우면 그 치운 것을 다시 물어다 하루 밤 새에
    새집을 짓고 하기는 수 년 째랍니다.
    옆집과의 벽사이가 좁고 집이 높다보니 별수를 다 써도 늘 패잔병꼴입니다.
    요즘은 좀 지쳤는지 가끔 나타나는데 그래서 좀 한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공황장애를 겪고 나서부터 몇 가지 내 생활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책읽기가 싫어진 것입니다.
    하루도 읽지 않고는 못사는 습관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책읽기가 싫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동안 (약 3개월)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SNS에서 치매에 관한 정보를 읽게 되었는데 치매의 초기
    증상 10가지 중에 독서를 멀리하는 것이 들어있는 것을 보고 나도 그런가 싶어
    책읽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번뜩 떠올랐지만 여간해서
    책이 읽어 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뭐 좀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하고 책을 찾다가 우연히 권사님 수필집이
    눈에 띄어 읽기 시작 했고 40편의 글을 이틀 걸려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간절히 기도하기를 다시 내 독서생활에 마중물이 되게 해
    달라고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거짓말 같이 책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휘파람새의 전설”
    권사님이 살아오시면서 겪은 가식 없고 유려한 그 글들이 내게 약이 된 줄 믿습니다.
    그야말로 동네 형님에 글 같은 그 수필집으로 인해 어쩌면 내 독서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도 몰라서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글 같잖은 글 (비둘기)을 이렇게 멋지게 한편의 수필로 재구성 해주심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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