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시골길을 가다 보면 뜻밖의 풍경에 맞닥뜨려
깊은 가을의 정취에 감동을 얻을 때가 있다.
따사한 가을 햇볕에 졸고 있는 村落 곳곳에 듬성듬성 서 있는 감나무다.
감을 잉태하느라 제 몸 다 바친 잎새들이 떨어져 가녀린 가지에,
위태롭게 주렁주렁 달린 감들이 그렇게 정감이 어릴 수가 없다.
감이라면 시골뿐 아니다.이젠 도회의 아파트 정원에도 감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게 감나무인지는 가을에 감이 열려야 그제야 알게 된다. 하지만 거기서도 감이 주렁주렁 열리지만
누구하나 올려다보는 사람도 없다. 왜 심었는지 나중에 누가 따는지 관심도 없다.
아마도 경비아저씨가 따고 줍거나 까치밥이 되겠거니 하겠지.
그러니 그 감으로부터 시골길에서 느낀 가을의 감동이 있을 리가 없다.
감 생산단지 같은 감나무밭이라면 모르지만, 관심 없기는 시골 길 감나무도 마찬가지다.
내 것이 아니니까 따지 않는다는 심성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한 두개 따 볼만도 한데
그 많은 여행길 사람들이 지나가도 그냥 지나친다.
만약 감이 아니고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이 주렁주렁 달렸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파트 감나무도 사과라고 한다면 아파트 주민이 반상회를 열어 골고루 나누자고 하지 않을까?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대구의 마당이 넓은 집에도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키가 엄청나게 컸었다. 우린 마당에서 놀다가 이따금 주르르 미끄러 떨어지기를 몇번,
어렵게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겨우 모양을 갖춘 초록빛 새끼 땡감을
두 주머니 가득 따 내려와 항아리에 소금 쳐서 담아놓는다.
며칠 지나면 감이 떮은 맛이 사라지고 연해지면 그걸 간식으로 먹었다.
다 익은 감은 인부를 불러 따서 껍질을 벗기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말렸는데, 그게 곶감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먹을 것도 부족하고 단것이 귀한 시절에 감은 훌륭한 간식이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집 감나무 가지가 늘어진 쪽이 바깥으로 이웃집으로 처졌었는데,
희한하게도 그 감을 따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도 단속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아무나 먹어도 좋은 마을 감나무. 배고픈 사람 그냥 먹고 싶은 사람
아무나 따먹으라고 심어둔 그런 나무. 아마도 홍시(紅枾)는 보시(布施)였나보다.
오늘 멀리 광양에서 존경하는 선배가 감 한 상자를 보내셨다.
격하게 반가워하는 아내와 열어보니 농장 감이 아닌, 모양이 제각각인 뒷마당 감이다.
깎아서 맛보니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없다. 매년 이맘때 뒷뜰에 심은 감을 따서 보내주는 선배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문득 우리 아파트 정원 감나무가 떠올랐다. 광양 뒷 뜰 감나무를 씹으면서 창문으로 보이는 아파트 감을 본다.
저감은 다른 감인가? 괜히 아파트 ‘감’에게 나의 이율배반이랄까, 그런 마음이 미안해졌다.
관심도 없이 열려야 감인 줄 알고, 저게 다 익으면 어찌되는 지도 모르고,
왜 심었는지도 모르며, 그냥 고개 들고 바라보기나 했나?
그런데 나는 같은 뒷마당 감을 먹으면서 감동하며 역시 가을엔 감이 최고야 하고 있는 건 무슨 위선인가 싶다.
따먹지는 않아도 밖으로 나가 저감을 만져보기라도 하자.
감이 그작은 관심에 얼마나 감사하고 감동해서 더 발갛게 얼굴 붉힐지 .....
우린 가까이 있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무관심해진다.
멀리있는것은 그립다며 사모하기나 하지.
아파트 감은 다 수거해서 경로당과 같은 이웃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사람 좋아하는 까치밥으로 몇개 남겨놓고 다 보낸다.
이웃은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이제 가을이면 감을 보면서 겨울이 걱정스러운 이웃들을 생각하게 되겠지.
로그인
회원가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