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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플라톤과 나의 행복
작성자 서대화 등록일 2020-12-22 14:32:43 조회수 42


 

 

 누구나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근래 내 생활이 단조롭고 변화가 없으니 사소한 일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정해진 생활공간에서 지내다보니 무료함도 느끼지만 종종 행복하고 감사한마음을 갖기도 한다. 고희를 지나 이제야 말로 노년에 이르러 집에서 세끼식사를 해결 할 수밖에 없는 때인데도 나를 필요로 하는 일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가능하다는 주말부부로 살아가고 있으니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생각하면 확실한 행복이며 감사한 일이다.


 생활비 이상의 금액을 정기적으로 아내의 통장에 입금을 시켜 주는 것은 받는 이 보다도 보내주는 내가 더 행복하다. 내가 하는 일이 설혹 남 보기에 하찮은 일이라 해도 아무려면 어떠랴. 사람을 그릇에 비유한 성경은 귀한 그릇은 귀하게, 천한 그릇은 천하게 쓰이기도 하지만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고 가르친다. 나는 내 그릇이 귀하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깨끗하게 쓰임받기를 염두에 두며 살아왔다.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화려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어도 천박한 인품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나는 감사한다. 지금도 내 그릇에 합당한 일을 하며 산다고 믿으니 아쉬울 것도 불만스러울 것도 없다. 직업에는 귀함도 천함도 없다. 다만 천박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는데는 동의하며 살아간다.


  지난 토요일엔 일을 마치고 한 주간 만에 집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집안이 쓸쓸하고 허전하다. 그러나 그런 미묘한 감정은 접어두고라도 우선 먹거리의 해결이 내 손을 거치지 않고는 만들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실한 문제로 다가선다. 아내가 잠시 집을 비웠는데도 이러한데 그녀가 이 세상에 없다면 그 얼마나 난감하고도 서글플까. 당분간 딸이 사는 곳에 다니러 갔으니 이내 돌아올 것이다. 문득 그녀가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일 뿐만 아니라 잔잔한 행복도 느낄 수 있었다.


  행복이란 자신이 처해있는 좋은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다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념이다. 삶에 큰 의미를 두며 살지 않던 내가 왜 이러한 행복한 감정을 찾으려 애쓰고 있는 걸까. 며칠 전에 들은 라디오 음악프로 중 진행자의 멘트를 통해서 내가 모르고 지내던 행복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되었다. 이 내용의 울림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행복은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하는 행복론을 그는 이렇게 전했다.


  첫째로,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두 번째,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용모.

  세 번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네 번째, 겨루어서 한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 번째,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조건인데 플라톤 쯤 되는 위대한 철학자의 말이니 나는 전적으로 믿는다. 바로 나 자신을 두고 한 말이 라고도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전쟁을 겪고 5. 60년대의 궁핍한 시기를 지낸 뒤에는 오늘까지 먹고 입는 문제에는 별반 부족함이 없었다. 하긴 그런 정도의 풍요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누린 보편적 혜택이긴 하다. 그러나 주거문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전망 좋은 산촌에 그야말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자적하는 삶을 살고 싶으나 경제적인 여유 말고도 여러 가지 상황이 허락지 않아 중소형 아파트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주거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보는 아내의 평가에 의하면 나는 많이 부족한 용모이긴 하다. 하지만 그리 혐오감을 유발시킬 만큼 추할 정도 는 아닌데다가 인상이 그리 악해보이지는 않는다고도 한다. 그러니 그 또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나는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니 명예로운 신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나를 아는 이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어떠할까. 나의 인품이나 인간적인 신용도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준법정신과 한 가정의 가장 역할 등에서 절반쯤은 인정해 준다는 것을 알기에 이 또한 플라톤이 말한 세 번째의 행복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체력으로 말한다면 근자에 누구와 힘겨루기로 승부를 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 한 조를 이루어 백 미터 달리기를 할 경우에 중간이상은 차지했고 군복무 할 때엔 완전군장의 하절기 강훈련에도 낙오하거나 동료에게 군장배낭을 맡길 정도의 허약체질은 아니었다. 중도에서 포기한 병사들에 비해서 내 체력은 강하다. 그러나 기진한 동료의 배낭까지 메고 언덕길을 뛰어 오르는 이들에 비하면 조금 못한 체력이다. 또한 빈번하지는 않았어도 가끔 문학회의 모임에 나가 단상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할 때 청중들 절반 정도는 박수를 치면서 동조해준 적이 있었다. 그러니 이 역시 플라톤 그분이 말하는 행복과 동떨어진 편은 아니지 싶다.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에 태어나 347년에 타계했으니 지금으로부터 약2400년 전 그리스에서 활동하던 철학자다. 그런데 그가 기원후 2000년대를 살아가는 나를 어찌 알고 이렇듯 포용력 있는 정의로 나를 위로하는 걸까. 이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참 행복한 부류에 속한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낮은 자세로 살아온 적이 많았다. 재산이 많아 자신이 갖고 싶은 것 무엇이라도 소유 할 수 있는 부류들을 보면서 상대적 빈곤에 허덕였고 인물 좋고 잘 생긴 사람 앞에서면 내 외모가 비교되기도 했었다


  명예롭고 권세 있게 살아가는 이들 앞에서면 자신도 모르게 작아졌으며 언변이 좋아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 해도 남들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출중한 자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조건이 남 같지 못하다는 자괴감으로 나는 내 안에 있는 행복을 느끼지 못한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행복이란 바로 내 안에 내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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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화(2021-01-08 16:08:03)

    누구나 스쳐 지나가는 사물들로 마음의 울림을 받을 때가있지요.
    보잘것 없는 제 글이라 할 찌라도 어느 한 사람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주게 되기를 바랍니다.
    별것 아닌 글에 성의있는 댓글로 고무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구본홍(2021-01-05 18:28:30)

    서대화 권사님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고등학교 때 읽었던 임어당(林語堂)의
    <생활의 발견>이란 간증이 떠오릅니다.
    동서양의 철학을 섭렵한 깊은 학식과 사회적 지위로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철학교수였던 임어당은
    철학에서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민약 그가 플라톤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싶습니다.

    스치는 사물과 형편을 깊은 감동으로 엮어내시는 서권사님의
    글에 늘 감탄합니다.
    플라톤을 통해 인생 3모작의 즈음에
    행복의 재발견이란 깨달음에 이른 서권사님을 축복합니다.

    요즘 교회출석이 어려워지니 우리 홈페이지도 잊게 됩니다.
    많이 늦게 감동받고 갑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 서대화(2020-12-28 13:03:59)

    댓글로 화답해 주신 네분의 형제들. 참으로 신실하고도 겸손한 인성으로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시는 모습이 다 보입니다.
    이성수 총무님. 김철환 권사님. 이현두 권사님. 그리고 아이티 위원장이신 김기두 권사님.
    내가 뵙고 느끼기에는 모두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인품과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는 분들이십니다.

    특히 김철환 권사님의 "부끄럽고 민망한 생각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는 내 인생" 이라고 겸손한 표현으로 자신을 낮추셨지만 실은 이 분이야 말로 많은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본문보다 값진 댓글을 받으며 그저 부끄럽다는 제 답글에 그는 오히려 더 민망해 하실줄 압니다. 過恭非禮라고 봅니다.

    김기두 권사 역시 자신을 겸손한 자리로 내려놓으셨습니다. 글쓰기 이외의 허다한 세상문제에서 그 누구도 따르기 힘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래와 같은 표현으로 필자를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댓글을 달때마다 느끼는것이 부족한 글솜씨에 애를 삭히며..." 자신을 낮춤으로 상대방을 높인다는 이론으로 받아드릴 뿐입니다.
    본문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면을 느끼면서" 라는 말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읽으시고 댓글로 평론해 주시는 성의가 고맙고 쑥스러울 뿐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이현두 권사님,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익어가는 자신을 발견하시는군요. 성숙한 인품이 느껴집니다. 독서는 확실하게 인품을 고상하고도 깊이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백세철학을 읽으며 60 ~ 75세가 되어서야 철이 들고 무언가 성과를 낼 수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간 이루어 놓으신 많은 성과 중에서 특히 악기 연주로 완성을 이루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시는 그대의 인생을 존중합니다. 성의있는 댓글 올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성수 형제의 진심이 담긴 댓글에 감사합니다. 인생 최 우선순위가 하나님 사랑이신 형제님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특히 사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시는 그 신실함을 어찌 따를 수 있으랴. 연임 연임 연임의 연속적 헌신의 기회를 그대에게 주신것은 그대를 사랑하고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 단원들의 결정으로 표현하신 것이 아닐까 합니다. 더 좋은 신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자시기 바랍니다.

  • IT위원회(2020-12-27 19:53:22)

    할렐루야
    사랑하는 단원 여러분! 요즘 참으로 답답하지요?
    나라 안팎히 이렇게 어수선한적이 있었든가요?

    코로나로 인해 정말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살고 있으면서
    숨을고르듯 답답한 삶을 살고있던차 '[수필] 플라톤과 나의 행복' 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답답하고 말못할 얽매임의 사슬에서 벗어나 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잠간 ~
    여기 댓글 솜씨들이 필자의 수필에 버금가지 않을만큼 참 잘들 쓰십니다.
    물론 이 사람이 필자의 내면외면을 잘아는 처지이기는 합니다 만
    글을 읽으면서 2400년전 플라톤이 어떻게 이러한 삶의 행복론을 주장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또
    그때와 지금은 자그마치 24세기 전의 얘기로 수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라면 온 인류가 지금도 잘 섬기고 있으니 별 문제가 없으련만
    다섯가지 행복론을 얘기한 플라톤의 주장에 나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으나
    어느 소재 하나만 가지고도 글을 잘 만들고 있는 필자의 본 글을 접하니
    이러한 의문들이 녹아버리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주장하는 행복론
    첫 째부터 다섯 번째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며 자신의 모습과 대조한 과정을 보면서
    이 사람이 느끼는것은 분명 필자의 10%이상의 겸손이 묻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암튼 본문에 댓글을 달때마다 느끼는것이 부족한 글솜씨에 애를 삭히며
    본문에 비해 너무나 부족한 면을 느끼면서 이만 총총 마치고자 합니다.
    모두모두 코로나로부터 조심하시고
    자유대한의 고귀한 모습들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마음 십분 발휘하며 기도로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자유대한민국 화이팅
    샬롬

  • 이현두(2020-12-26 00:05:44)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을 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일까?
    보통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오바일까?
    김형석 교수님이 "100년을 살다보니"란 저서에서 인생에 가장 의미있고 행복한 때가 언제일까? 라는 질문에 '60세~75세'라고했다.
    그 이유가 60세가 되니 철이 좀 든 것 같고 75세까지는 무엇을 하든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권사님이 이제 그 과정을 다 겪어보셨으니까 이제는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는 싯점이 되셔서 그런지 뭔가 깊이가 있는 글솜씨가 느껴집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든 최고로 잘하고 싶고 제잘난 맛으로 살아 온 것이 한 번씩 부끄러울 때가 있으니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권시님의 수필 한 편이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귀한 말씀 같아서 댓글을 올려봅니다.

  • 김철환(2020-12-25 09:41:44)

    권사님 글을 읽다보니 마치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멋진 인생을 사시는 권사님의 모습에 내 모습을 비춰 봅니다.
    플라톤이 말한 그런 내용들에 얼마나 가깝게 접근했는지 되돌아보게도 되구요.
    부끄럽고 민망한 생각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는 내 인생 그나마 예수를 몰랐다면
    내 스스로 존재에 대한 자부심이나 긍지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내세우기보다 들어 감추고 싶은 모습으로 점철된 내 삶속에도 더러 권사님처럼
    들어내 자부심을 가질만한 틈들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인생을 반추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성탄절이 되었지만 예배도 드리기 어려운 나날들 속에서 권사님 아름다운 글 한 편을
    읽으므로 각박한 삶속에 윤활유 같은 문맥들이 나를 더 없이 행복하게 합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 이성수(2020-12-24 00:06:40)

    '플라톤과 나의 행복'의 다섯까지의 조건에 설명을 읽으며 마음이 평안하다.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물질적인 욕심만을 생각했는데 고대 그리이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서양철학의 정점을 이루신 분들 가운데 플라톤의 일반 시민을 위한 2,400년전의 행복의 의미가 오늘날까지 적용되니 행복이란 바로 내 안에 내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누리며 살아야겠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친히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메리크리스마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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