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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생각나는 연탄(煉炭)
작성자 구본홍 등록일 2020-12-07 23:14:11 조회수 43

세밑에 생각나는 연탄(煉炭)

 

1956년경으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대구에 살면서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집이 남산동 남문시장 옆 주택가에 있어서 시내 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시장을

가로질러야 했다. 시장 곁이라서 집 근처까지 좌판이 죽 늘어서기도 하고

엿장수, 오뎅(어묵)장수, 달고나 등 온갖 장수들의 이동포장마차도 즐비하였다.

3학년은 오전 수업뿐이어서 파하고 집으로 오던 중 오뎅마차 앞을 지나다 그 냄새에 끌려

마차로 다가갔다. 한 아이가 꼬지 오뎅을 소스에 찍어서 아끼며 천천히 먹고 있었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나는 군침을 흘리면서 오랫동안 그 앞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는 기억이 없다. 기절한 것이다.

눈을 떠 보니 신작로(新作路) 네거리에 있는 병원에 누워있었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키 높이가 오뎅을 끓이는 화로 바로 위 정도여서 연탄가스를 코로 마구 들이킨 것이었다.

시장 사람들은 딱 보고 연탄중독인줄 알고 급히 나를 들쳐엎고 병원으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다른 좌판 아주머니는 내가 뉘 집 아이인지 아시는 터라

우리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이 사실을 어머니께 알려주셨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가정집들은 주로 장작 아궁이로 연탄 사용하는 가구가 드물었다.

리집도 장작을 땠다. 연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내가 연탄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이 오뎅마차의 연탄이었고 그 첫 경험은 연탄가스중독이었더 것이다.

 

연탄은 한국에서는 일제 때 전파되었지만 당대에는 산업용으로 주로 쓰던 수준이었고

가정용으로는 별로 보급되지 않다가, 1950년대 중후반 이후로 산림 황폐화 대책의 일환으로

연탄이 보급되기 시작해서 70~90년대에 한국의 핵심연료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재래식 가구나 식당 등에서 난방이나 취사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1990년 이후에 태어난 20대 젊은 사람들에겐 연탄이라 하면 서서갈비나,

돼지갈비 소주집 혹은 간혹 포장마차에서 보는 취사용 땔깜으로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언론사 mbc에 입사한 74년에만 해도 방송 신문의 톱 기사가 연탄가스사고 였다.

조간 신문엔 일가족 연탄가스 중독 사망이 거의 매일 실렸고,

사건 담당기자인 나는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서 사망자 사진 구하느라 엄청 애를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TV방송은 현장 촬영도 중요하지만 사망자 사진을 구해서 보도하는 것이

신문과의 차별화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망자 친척이나 다른 가족들이 통곡하고 있는 틈에도 사진 구한다고

매케한 냄새로 가득한 집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몰매를 안 맞은 것이 다행이었다.

60년대 부산에선 매일 아침 신문기사 톱이 쓰레기 통 옆에 버려진

복어알 주워 끓여먹은 일가족 몰살같은 눈물겨운 기사가 거의 매일 나왔었는데,

좀 먹고 살만하니 이번에 가스중독으로 이어진 것이다.

연탄가스는 재래식 가옥구조가 연탄 온돌이었던 관계로 그 불로 밥도 짓고

국도 끓이는가 하면 자동으로 난방도 되는 구조여서 연탄가스가 방문틈새로 새어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가스가 스며들면서 사람의 목숨도 서서히 앗아가는 죽음의 가스였다.

 

나는 나이 31세 이던 1979년에 화곡동 13평형 주공임대아파트에 입주하는 행운을 획득하였다.

결혼 3년 만에 정처 없던 단칸방 월세에서 탈출해서 이리저리 빚을 내서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연탄 아궁이였다.

나의 가장 큰 임무는 쌀과 연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과

특히 겨울에 연탄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불을 꺼트리면 다시 피워야 하는데 그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얼마 후 번개탄이 나와서 한숨 돌렸지만 불을 꺼지지 않게 지킨다는 것이 엄숙한 임무인양 비장하게 행하였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쌀과 연탄을 들여놓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여서 연탄가게에서 배달할 때 나도 거들 수밖에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부엌 한쪽 구석에 잔뜩 쌓여있는 쌀과 연탄을 보면 왜 그렇게 행복했던지,

내가 엄청난 부자인 듯한 만족감으로 흐믓했다.

그때도 연탄가스사고가 여전히 많아,

출입처이기도 했던 한양대학교 공대에서 가스사고 후 임시처방을 연구하였는데,

일산화탄소 중독에 김치국물이 효과가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고 해서 시끌벅적하게 보도했던 기억이 있다.

김치국물이 일산화 탄소중독에 효과 있다는 것은 내가 어릴 적에 몸소 중독되어 체험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민간요법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니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과학적 입증이 놀라운 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지혜가 경이로운 것이었다.

 

이렇듯 각 가정마다 연탄이 주요 연료로 사용되었던 시절이어서 덩달아 강원도 석탄 탄광도 대호황이었다.

수요에 공급하기 위해 탄광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면 사고도 발생한다.

강원도 장성탄광에서 갱이 무너지는 매몰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나는 그때 이리역폭발사고를 대특종하고 현장에서 취재하던 중이었는데,

서울 취재부장의 특명이 내려와 곧바로 장성탄광 사고 현장으로 급파되어 갔다.

지하 천여m 갱도까지 직접 내려가 취재하고, 관계자 취재를 통해 현장상황을 보도하였다.

광부들과 소주도 마시면 그들의 애환을 같이 했는데,

광부들이 유난히도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것 같아서 물었더니

광부들은 지하먼지나 석탄가루를 마셔서 진폐증(塵肺症)에 걸릴 확률이 아주 높고 그로인해 사망한 사람도 많고 했다.

 먼지를 목구멍부터 깨끗하게 쓸어 위로 보내는 작용을 돼지고기가 한다는 것이다.

즉시 확인할 곳도 없어서 그냥 믿기로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돼지고기가 진폐증에 좋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떻든 광부님들 고맙다. 우리가 땔깜이든 취사용이든 연탄을 쓰고 있지만,

그 연탄이 얼마나 많은 광부들의 노고와 애환으로 탄생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광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길고 긴 추운 겨울날 무엇으로 몸을 데웠을까 싶다.

 

연탄은 가옥구조가 온돌이 아닌 난방으로 바뀐 후에도

연탄보일러의 연료로 계속 사용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갔다.

그러나 1900년대 말경부터 석유, 가스보일러가 개발되고 신도시 아파트단지 확산에 맞춰서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연탄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제6공화국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은 결정타였다,

많은 탄광이 폐광하고 연탄사업도 급속히 사양길로 곤주박질하면서 적

어도 도회지에선 이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를 보기 드믈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20년인 지금 아직도 전국에 15만여 가구가 연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들 중앙집중식 난방이나 기름, 가스보일러로 개조했을 텐데 아직도 연탄을 사용한다면

이런 가구들은 아무래도 어려운 살림을 살고있는 가구란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실제로 도시 중심이든 변두리든 아직 재개발이 안된 고지대의 고가(古家) 마을로 가면

대부분이 연탄으로 난방을 하고 취사를 한다. 독거노인 가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골목길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 안팎으로 연탄재들이 수북이 쌓인 것을 본다.

연탄이 많이 필요로 하는 겨울이 되면 이들은 연탄을 구입하지 못해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곳저곳에서 불우이웃돕기, 연탄 나눔의 행사가 벌어진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해마다 펼치는 <사랑의 연탄 나눔>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런데 교회 뜰에 나가보니 모금운동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다.

보통 5~6개 테이블을 펼치고 청년부 학생들이 모금을 하였는데, 올해는 본당 로비에 모금함만 덜렁 있다.

코로나19의 재창궐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면서 대면활동이 불가피한 모금운동은 할 수 없게 된것이다.

모금함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모금은 그렇지가 않다.

호소하지 않으면 동참을 끌어오기가 너무 힘든다.

게다가 모금을 해서 연탄을 전달하는 것도 대상가구들이 대체로 개발의 손이 미치지 못한

산꼭대기 마을에 많아서 많은 인력이 동원돼야 하는데, 방역지침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외부로부터 침입한 괴질로 인해 훈훈해야 할 세밑의 나눔사랑이 실종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지자체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을 테지만

연탄나눔이란 연탄 몇 장 배달하는 동정이 아니다.

그들에게 아직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이웃사랑의 전달이다.

모두가 우선 내 주변에부터 사랑을 전하고 소통하는 세밑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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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수(2020-12-17 11:28:38)

    "세 밑에 생각나는 연탄"을 읽으며 제일 먼저 어렸을 때 어머님께서 연탄을 갈기위해 늘 애쓰시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어머님께서 외출하실 때면 국자에 설탕을 넣어서 몰래 달고나를 해 먹던 그 때, 어머님은 국자를 보시고 다 아시면서도 모른 척 하셨던 그 때... 소명을 다 한 하얀 연탄을 마당에 탑처럼 쌓아 놓았던 그 모습들...권사님의 연탄의 역사를 어릴 적 그 시절부터 오늘 날의 광림교회의 <사랑의 연탄 나누기>에 이르기 까지...
    땔감으로 밥도하고, 목욕물도 끓이고 동시에 방을 따뜻하게 온돌방으로 만들어 준 그 시절부터 연탄의 발견 그리고 연탄의 좋은 점과 문제 점...연탄이 우리들에게 전달되기 까지의 장성 탄광의 광부님들의 수고의 손길, 기름 보일러, 가스 보일러의 발전까지 ...청년 시절엔 주변을 돌아보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고향에서 섬기는 교회의 이름으로 많은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었는데... 이제는 <사랑의 연탄 나누기>에 수고하는 청년들에게 박수 갈채를 보내 드립니다.
    시기에 알맞은 봉사로 주님께 영광을... 학생은 학생의 신분에 맞게. 청년 때는 청년에 맞게. 광림남성성가단은 남성성가단에 맞게 오직 주님께 영광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권사님의 귀한 글에 감사와 박수를~~~ +사랑하고 감사하고 축복합니다+

  • 이남용(2020-12-17 10:32:02)

    먼저 추억의 글을 올려주신 구본홍 권사님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연탄하면 참 많은 추억이 있어서요.
    연탄재를 깨뜨려 눈싸움 하듯이 윗동내 아랫동내 연탄 재싸움 하던일...
    새벽마다 울리는 연탄재 수거차의 음악소리...
    그때 어머니와 함께 연탄재를 버렸던 기억...
    어느 집이나 한번씩은 경험했을법한 일가족 연탄가스 중독...
    왜 그리 머리가 아팠는지 좀 더 커서 알게되었지만요...
    어른들이 주시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머리가 안 아프길 기다리던 기억...

    1999년 12월 24일 금강산 관광가면서 북한의 아파트에서 장작 때는것을 보고 많이 신기해 했는데...
    우리도 아파트에서 연탄을 땐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랏습니다.
    우리가 지금 처럼 잘 살게된것도 얼마 안된것 같은데....
    다시 잃어 버릴까 걱정되는 세상이...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물러가고 모든 일상이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서대화(2020-12-13 15:42:41)

    연탄가스 중독사, 복어알 중독사망등. 우리 역사상 지울 수 없는 가난했던 시절의 사건사고의 주요 사연 들이었지요. 요즘 젊은세대들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조차 어려울 듯한 지난 세기의 이야기. 그래도 그 시절을 함게 지내온 세대들은 지금의 발전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때는 이래도 될까. 하는 미안한 마음도 갖게 됩니다,

    그 시절을 살면서 연탄중독 한 번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있을까. 치명적이 아닌 가벼운 중독 사건쯤은 누구나 겪었을 줄 압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애타게 그립기도 합니다. 새벽 두세시 즈음해서 아내 모르게 밖에 나가서 연탄을 갈아 넣고 들어와 다시 잠들던 시절, 아내를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하고 어려운 봉사중 하나였지요. 젓먹이 아이 젓병 물려 놓고 연탄불 갈아 넣으려 밖으로 나가는 아내에게 "내가 갈았어 그냥 편하게 더 자"

    그리운 그 시절, 30대 남편 20대 아내. 젓먹이 어린 첫딸. 젊은 아빠. 어린 아내. 40여년 전의 내 모습이 어렴풋 떠 오릅니다.
    연탄가스와 복어알 중독 사건이 하루도 거르는 날 없다시피 사회면을 장식하던 그 시절이지만 돌아갈 수 없는 옛 이야기가 가슴을 아련하게 합니다.
    복어알의 독성을 알지 못해 먹게 되었겠지만 복어알을 주워 먹을 만큼 가난하거나 처절한 삶을 살지 않은것에 감사할 뿐이지요.
    그 시절이 있어 지금의 번영과 발전된 문명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젊은 세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자체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을 테지만

    '연탄나눔이란 연탄 몇 장 배달하는 동정이 아니다. 그들에게 아직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 고 느끼게 해주는 이웃사랑의 전달이다' 라고 끝맺으시는

    글의 말미가 훈훈합니다. 좋은 수필한 편에 감동받았는데 며칠동안 한가한 시간이 없어 댓글이 좀 지연 되었습니다.
    자주 올려 주시면 많은 이들이 즐겨 읽고 감동 받습니다. 물론 홈페지의 품격도 올라갈 것이고요...

  • 김철환(2020-12-12 10:51:54)

    권사님 글을 읽으면 퇴색되어 빛바랬던 내 어린 시절이 아주 생생하게 기억되어지는 마력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연탄에 대한 추억이야 누두든 가지고 있겠지만 실제로 중독이 되어버린 경험을 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줄 압니다.
    제가 중독이라는 괴물을 한번 만난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졸업하고 서울 외삼촌댁에 와서 주경야독 하던 시절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정말 천국 문턱을 갖다 온 경험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우물가에 가서 (대방동 두레박 우물이 있던 외가) 물을 뒤집어쓰고 마시고 하는 것을 옆방에 살던 아주머니가 도와 주셨는데 한 시간 가까이 그 짓을 하고 깨어났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또 한 번은 복어 알 이야기 인데 제가 신라 호텔에 활어를 납품하던 시절 (1990년대) 이야기입니다.
    그때 활 복어를 납품했는데 주방에서 복어 손질을 하고 나서 복어알과 다른 생선쓰레기와 함께 쓰레기봉지에 버린 것을 정리하는 미화원들이 복어 알 인줄 모르고 가져다 끓여먹어 (신라호텔 근처 식당) 한 사람이 사망한 사건을 기억하게 됩니다.
    (당신 매스컴에 대서특필되었음)
    연탄가스와 복어 알은 중독이 되어도 통증이 없는 것이 공통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서운 저승사자라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겠지요.

    읽을 때 마자 참 좋은 글을 잘도 쓰시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강영진(2020-12-10 13:19:47)

    '조국근대화'라는 국정지표속6,70년대시절은 대다수가 민생으로 허우적거리는 시절이었죠

    서민들의 힘겨운 눈물과 시린 웃음으로 애환이 뒤섞인채 서울,시골할것 없이 동네뒷골목 풍경은 역시 쓰레기통옆에 쌓인 연탄재가 중심으로 자리 잡던 시절이었죠. 아련하지만 서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이 연탄불의 회상!

    그 불에 양미리도 구어먹고 1년에 두어번 돼지삼겹도 굽고 을씨년 어스름한 날이면 야채부침개도 해먹고...
    나일먹으니 이런것들이 다 즐겁고
    정겹기만한 좋은기억으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오

    특히, 연탄여열에 쉰김치찌개 냄비 올려놓고 바글바글... 밥한그릇의 식사는 평생 잊지못할 기억조각이 되고 맙니다

    연탄불에 대한 기억중 또하나의 인간미로 다가오는 글귀는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속에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워 본적있느냐"는 구절이 떠오르지요
    점점 각박하고 냉냉해진 세상 세삼 이 싯귀가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과연 나는 그렇게 한번이라도 살아왔을까 반문해보게되나 기억해 내기가 좀체로 쉽지않은 까닭으로 낯빛이 붉어지고 어깨만 무겁게 쳐질뿐 입니다

    구 권사님,이번도 좋은 양식되는 글로 온기넘치게 해 주심에 또 한번 감사드리고, 귀하신 분 스토리 텔링식 글,말의 情感度가 늘 저의 상상과 능력을 초월하고 있슴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현두(2020-12-10 09:27:26)

    권사님의 필력과 스토리텔링에 한번 더 감동을 받습니다.
    역동적인 우리나라의 뒤안길을 잔잔한 이야기로 풀어주셔서 한참동안 옛 추억에 젖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동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IT위원회(2020-12-10 08:52:33)

    세밑에 생각나는 연탄(煉炭)
    이러한 제목으로
    올려주신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역시 일등 방송기자 출신 답습니다.
    마치 사건 현장의 모습을 보는 듯한 생각에 잠기면서 읽었습니다.
    필자와 살아온 세대가 비슷하다보니 공감하는 바가 더욱 큰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보고 느끼며 살아온 자취를 떠올리게도 하고 기억이 분명치도 못한 가운데
    어렴푸시 떠오를만한 내용 까지도 세세하게 기록해주신 내용이
    한 세대를 가름하는 나래이터 같기도 합니다.

    느끼는바는 많으오나
    글 솜씨가 부족하다보니 마음에는 많은것들이 동하고 있지만 밑천이 들어날 것 같아
    이만 감동을 느끼며 줄이렵니다.
    감사합니다.
    년말을 맞이하며 좋은 시간을 같기를 원하는 주님의 인사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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