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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저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작성자 서대화 등록일 2020-09-02 16:14:59 조회수 57


 지하철 빈자리에 앉자마자 차는 이내 출발했다. 러시아워가 지난 시간이라 승객이 많지 않아 몇 명만 서 있을 뿐 차내는 쾌적한 상태였다. 자리에 앉은 이들도 대개가 졸고 있거나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등 조용한 분위기로 열차는 다음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에 서있는 승객들 발 사이로 누군가 마시고 버린 빈병 하나가 또르르 굴러 간다. 피로 회복제로 알려진 이 병의 크기는 한 손안에 들어올 정도이니 쉽게 사람들의 발에 밟힐 수 있을 것이고 밟히면 깨어지기도 할 것이다. 전동차의 고른 바닥재 위로 마치 모데라토의 속도로 굴러가니 소리도 들리지 않아 우연히 시선이 그곳을 향한 이가 아니라면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누가 빈병을 아무렇게나 버렸을까. 대개의 승객들은 그것을 못 보았거나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빠르지 않은 속도로 굴러가던 이 빈병은 연만해 보이는 어떤 남자의 발 앞에 멈췄다. 경로석에 앉아있던 그는 회색빛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겨 고상한 차림새가 퍽 선량해 보이는 어른이다. 그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안정된 발동작으로 병을 살짝 밟아 멈추게 하더니 구둣발로 지그시 누르면서 더 이상 구르지 않도록 잡고 있다.

 

 나는 그의 다음동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나라면 저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궁리했다. 차내를 순시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에게 인계하는 방법이 있을 것인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지하철에 어디 수시로 직원이 배치되던가. 청소를 담당하는 미화요원이 있다하더라도 종점가까이 도착해서야 나타날 것이니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의자 밑 어디에 고정시킬 만한 공간이 있어 밀어 넣을 것인가.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의자 밑 부분에는 그 무엇도 넣을 만한 곳이란 없다. 의자의 끝 부분과 출입문 사이 모서리 부분이 그나마 발길이 닿지 않을 텐데 그곳도 안전하지는 않다. 마치 내 구두 밑에 빈 병이 멈춰 있는 것 같은 착각으로 처리 방법을 찾고 있었으나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러기에 지하철에는 음식물이나 찻잔 혹은 음료수 병은 가지고 승차하지 말라는 공지문을 부착해 놓았을 것이다.

 

  다음 역에 이르러 몇몇 승객이 내리고 탔다. 조금 전 보다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의 숫자는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나 혼자서만 그의 작은 고뇌에 동참하고 있는듯 했고  검은색 구두 밑에 멈추어 있는 빈 음료수 병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저 분이 어떤 액션을 취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면 저 빈병은 또 다시 제멋대로 굴러다닐 것이고 그 모습을 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은 불안하고 또 불편 할 것이다.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은 질서와 예절이 절실히 요구되는 공간이다. 객실 안에 경로석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예절을 중시하는 우리의 따듯한 심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경로석은 낮과 저녁 시간대에는 무난하게 지켜지고 있지만 아침 출근시간에는 노인에게 양보하는 이들은 보기 힘들어 졌다불가피한 일로 인해 외출을 했겠지만 연만하신 어른들께서는 이른 시간대의 외출은 되도록 삼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낸다.

 

 또한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할 핑크빛 카펫이라는 표시문자가 인쇄된 임산부 보호석은 객실 가장 중간의 양쪽 끝자리 2석을 정해놓고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임신초기의 여인이라면 외모에서 표시가 나지 않는 다는 것을 감안 하더라도 가임기가 훨씬 지난 중장년의 여인이 앉아있는 것은 지하철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다. 어떤 때는 혈기 왕성한 남성들조차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딱하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하다. 지하철 내에서의 예절은 그 나라의 문화적 척도이며 이용객 모두가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 그런데 오늘은 누군가가 마시고난 빈병 하나가 바닥 위를 멋대로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전동차 내에서의 작은 일에 신경을 쓰는 동안 열차는 다음 역에 도착했다. 몇 사람의 승객이 내리는 중에 그이도 내릴 때가 된 듯 정거장을 확인 하더니 일어설 채비를 한다. 저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바로 이때 그는 허리를 굽혀 아무렇지도 않게 병을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는 것이다. 내가 작은 고뇌에 빠져 있는 동안 그는 내릴 때 가지고 갈 것을 마음속에 이미 작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게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 그가 내리고 차는 떠났다. 잠시 불편하던 마음이 비로써 안정과 평온을 찾기도 했지만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 된 자존감도 갖게 되었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그 날 받은 신선한 감동의 기억이 지워지지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도 되는 대우를 받을 때 까지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습관을 행동으로 옮긴 것 뿐 일 것이다. 그와 내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과연 빈병을 가지고 나가서 쓰레기 통 재활용 칸에 넣었을까

 

티핑포인트 (Tipping Point)라는 용어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급격하게 변화되는 극적인 시점을 일컬음인데 오늘과 같은 사회적 도덕성이 사회전반에 퍼져나가 우리의 의식구조가 한층 변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후에도 기분 좋은 며칠을 보냈다. .

 

                                                   (2020년 월간 수필문학 3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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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철환(2020-09-24 12:05:40)

    권사님은 참 글을 잘 쓰신다는 이야기 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일전에 한 번 읽었던 글인데 다시 읽어보니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이 전신에 넘침니다.
    앞으로도 자주 글을 올려 주셔서 부족한 나로 많이 배울수 있게 해주세요.
    홈페이지도 자주 출석하겠습니다.
    건강이 좋아지면 더욱 열심이 출석해서 여러 단원님들의 글을 읽겠습니다.

  • 구본홍(2020-09-13 00:16:32)

    서권사님의 글은 늘 옆에서 들려주는 듯한 다정과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겸손이 보이지요. 참 잘쓰십니다. 그래서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주는 그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사물과 현상을 보는 시각이 매우 복음적인 까닭이라고 보여집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 이남용(2020-09-12 19:31:43)

    일상의 삶속에서 찾아낸 권사님의 자존감에 경의를 표합니다.
    다시 한번 삶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권사님의 평안함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 글에 부족하지만 감사와 함께 찬사를 보내 드립니다.
    권사님 화이팅!!!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 IT위원회(2020-09-09 21:42:16)

    지하철에서 흔히 볼수 있는 모습이다.
    오늘 이 필자와 같이 비슷한일을 겪은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모습을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재미있는 글로 만든다.

    글의 시작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뭐 모데라토의 속도로 설설 굴러간다는 얘기겠다.
    짐작이 간다.
    그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 병이 경로석까지 가서 어느 노인장? 앞에까지 가서 그의 발에의해
    멈추어진 상태다.

    또 궁금하게 한다.
    대개의 경우는 자기가 그자리에 있을때만 발로 밟고 있다가
    그냥내리는데
    그 사람은 과연 그냥 놔두고 내릴까? 아니면 가지고 내릴까?
    또 궁금해 진다.

    그런데
    참 멋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들고 내렸다
    나같으면 어떻했을까?
    경우에 따라선 들고 내리고 또 경우에 따라선 구석에 밀어넣고
    더 이상 구르지 않게 하고 내렸을 것이다.
    그냥 모른체 하지는 않는다.
    이 글의 말미는 그래도 괜찮은 모습을 보게되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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